기록/책

자유는 내게 낯선 폭력이고, 통제는 익숙한 폭력이었다.

moii 2024. 8. 16. 11:28


오렌지와 빵칼
청예 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음가짐을 신봉하며 살았음에도 바 란 적 없던 어떤 면이 생겨났다. 이제 동전은 완전한 양면 을 가지게 됐는데, 낯선 면을 보고 있으면 원래부터 있던 면인지 동전이 통째로 바꿔쳐진 것인지 도통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저 성숙의 또 다른 모습이겠거니 싶어 판단을 유예했다.


어떻게든 악인이 되지 않는 방식만 선택하는 건 마음 안에 용수철을 꾹 눌러두고 손을 떼지 않는 일과 같았다. 예측 하지 못한 곳으로 튀지 않게끔 스스로를 절제하는 일. 그 결과로 지금의 나는 수원과 마주 보고 누워 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고 불합리했다.
선량함을 고집하기 위해 지켜온 선택들이 병렬적으로 이어지는 순간, 미래에 남는 건 원하지 않던 삶이라는 모순.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고, 이 남자와의 미래가 저주라 생각하며, 내가 해온 모든 일이 쓸모없는 짓거리로 전락하는 순간을 예측하는 지금의 끔찍함
어쩌면 나는 잉태되는 시점부터 악인으로 살 운명이었을까.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지기 전에는 그 누구도 자유로워질 수 없고, 모든 사람이 도덕적이기 전에는 그 누구도 완전히 도덕적일 수 없다. 또한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 전에는 그 누구도 완전히 행복해질 수 없다

여자는 완벽한 균형을 완성했다.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전시하여 어느 쪽으로도 인생을 내던지지 않았다. 배덕과 도덕의 중앙에서 줄타기하는 인간은 흔치 않은데, 스스로를 통제하고 동시에 해방을 누린다는 이율배반적인 상태를 완성했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자유의 왕국이었다. 정문과 후문이 하나의 원통처럼 이어져 있어 입구와 출구가 불분 명하나, 따지고 보면 입출구를 나눌 필요가 애초부터 없었다.

자유는 내게 낯선 폭력이고, 통제는 익숙한 폭력이었다.
둘 다 나를 어떤 식으로든 다치게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익숙한 악마에게 어깨를 내주는 게 삶을 지킬 가능성이 높았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나는 여 자에게 시술의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방법을 묻고 싶었다.
원래대로 돌아가야함을 알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이것이 결국 나의 진심이었다. 새로운 맛을 계속해서 탐하는 혓바 닥처럼 뒤탈은 개의치 않은 채 끊임없이 현재의 희열만 느 끼고 싶었다. 무한한 성욕이 들끓었고,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는 환청이 들렸다.

우리는 결여된 존재로 남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결여를 채우는 게 가끔은 버겁다. 있는 그대로 수용되길 원한다. 비록 내 도덕성이 상대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도, 내가 이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지 못해도, 심지어 그 정의에 균열을 만드는 존재라 할지라도.
그냥 살아 있고 싶다. 있는 그대로.



그러니 타인을 마주하는 일에 괴로움이 없기를.